“빛과 소금”
“빛과 소금”
  • 보령뉴스
  • 승인 2011.02.1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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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5장 13-16절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성경은 우리 삶의 기록입니다. 삶에는 수많은 행동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행동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행동과 절대로 무관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는 가장 좋지 않은 태도는 ‘내가 이것을 안다’입니다. 그저 머리로만 성경을 안다고 하며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주 좋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와 상징의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와 상징은 듣는 이들에게 행동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빛과 소금’이라는 비유도 그렇습니다. 듣는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상 빛의 근원은 태양입니다. 태양은 거대한 불덩이입니다. 태양은 타고 있습니다. 빛이라는 말은 ‘너 자신을 태우라’입니다. 소금이라는 말은 ‘너 자신을 녹이라’입니다. 태우고 녹이는 것은 희생이고 아픔이고 고통입니다.

오늘 본문은 소금이 맛을 잃는 경우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빛을 내야 하는 사람이 빛은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인 교회는 드러나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소금 역할을 못하고 빛 역할을 못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비난하고 짓밟을 것입니다. 이미 그런 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의 빛이 드러나지 못하는 경우는 빛이 ‘말(됫박)’ 아래 있는 경우입니다. 등불을 됫박 아래 놓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말, 됫박을 경제 상황, 우리의 살림살이라고 풀이하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돈 없다고, 상황이 어렵다고 빛의 역할을 그만 두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교회도 그런 경우를 많이 겪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고충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의 빛을 사람에게 비추라고 요구합니다. 빛을 비추는 것은 착한 행실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일부러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요즘은 밝은 시대입니다.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다 보는 세상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자매가 골목길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인의 목에 자기의 목도리를 감아 주는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가 되었습니다. 그 자매가 알리려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수많은 찬사가 그 자매에게 쏟아졌습니다. 그렇게 그저 착한 일을 했는데 많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자매가 예수를 믿는 분이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류시화라는 시인이 오늘 본문에 아주 걸맞는 ‘소금’이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이 시로 결론을 대신합니다.

‘소금이 / 바다의 상처라는 걸 /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소금이 /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 흰 눈처럼 /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 아는 사람은 / 많지 않다 / 그 눈물이 있어 / 이 세상 모든 것이 / 맛을 낸다는 것을’

대천신흥교회 정승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