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긍정의 힘 불어넣는 '미소루틴'은 멘탈 갑
베트남 출신 승려로 세계적인 명상가인 틱낫한은 “즐거워서 웃는 때가 있지만 웃기 때문에 즐거워지는 때도 있다”며 “웃음은 뇌뿐만 아니라 근육을 자극하고 활력을 촉진해 준다”고 말했다. 긍정의 힘을 뜻하는 ‘피그말리온 효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웃음이 주는 효과는 아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골프여왕 ‘태국의 박세리’ 에리야 쭈타누깐과 ‘메이저퀸’ 전인지(23·하이트진로)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웃음이다. 대개의 골프 선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경기에 임한다. 그래서 가끔 오해를 사기도 한다.
하지만 쭈타누깐과 전인지는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들은 원래 잘 웃는 선수들이 아니었다. 홀로 압박을 견뎌야 하는 골프 선수라는 숙명 때문에 만들어진 그들만의 ‘프리 샷 루틴’이다. 틱낫한의 얘기처럼 효과는 컸다. 어느새 세계 여자골프를 대표하는 선수로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 4월 시즌 첫 메이저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선두를 달리다가 마지막 3개 홀에서 연속보기를 범해 리디아 고(뉴질랜드)에게 우승컵을 내줬다. 미소는 이후부터 시작됐다. 이전에도 우승 경쟁을 하다가 최종 라운드 막바지에 자주 무너졌다. 압박감을 크게 느낄 때마다 템포가 빨라지고 흥분하는 점을 문제로 파악한 심리코치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놀랍게도 이후부터 ‘멘탈 갑’이 됐다. 쭈타누깐은 요코하마 타이어 LPGA 클래식 우승을 시작으로 킹스밀 챔피언십, LPGA 볼빅 챔피언십까지 3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LPGA 투어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여기에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까지 해냈다. 캐나다 여자오픈까지 정복해 올 시즌 5승이나 올렸다.
쭈타누깐의 경기는 팬들의 환호를 자아낸다. 300야드를 보낼 수 있는 괴력의 장타자가 보여주는 귀여운 미소는 어느새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 됐다. 쭈타누깐도 웃음에 대한 효과를 인정한다. 그는 “프리샷 루틴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라도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해진다”고 설명했다.

원래는 생각이 많고 신중한 골퍼였다. 하지만 자신의 성격이 골프 경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부터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전인지의 ‘미소 프리샷루틴’은 실패 속에 오랜 기간 노력한 결과물이다.
20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전인지는 “골프에 재미를 느끼고 팬들과 호흡하면서 플레이한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오더라. 멘탈 수업에서도 웃는 게 경기력에 도움이 된다고 배웠다”고 말했다. 에비앙 챔피언십이 끝난 후 미국의 골프채널은 “전인지의 미소는 쭈타누깐의 스마일 루틴처럼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다. 그는 올해의 스마일이다”고 높이 평가했다.
골프는 멘탈 스포츠다. 매 대회 100명이 넘는 경쟁자가 있지만 진짜 상대는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감정 콘트롤이 중요한 운동이다. 전문가들 역시 ‘긍정의 힘’을 강조한다.
국가대표 골프 선수들을 다년간 지도하고 있는 박영민 한국체육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는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만 우승도 할 수 있다. 순간의 감정에 흔들리면 바로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며 “자신만의 긍정적 에너지를 표출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웃음은 좋은 표현 방법 중 하나다”고 말했다.
지나친 ‘포커페이스’는 경계 대상이라고 전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골프 선수들은 어릴 적부터 감정을 숨기는 연습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골프는 감정을 억지로 숨기는 게 경기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격에 맞게 감정을 표출해야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