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만 3~5세 보육료) 예산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면서 한 달 뒤 보육대란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 시급한 정부대책이 요구된다.
교육부는 22일 “(누리과정 예산은) 시·도교육청이 책임지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기존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에 전국 교육감들은 ‘턱없는 소리’라고 맞받아치며 지난 17일 누리과정 해법을 위한 긴급회의를 정부에 제안했지만 정부는 무대응했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세우지 않은 곳이 7군데나 된다. 나머지 시·도도 일부 예산만 계획했을 뿐 1년분을 정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게다가 누리과정 예산의 책임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 어린이집은 물론 유치원 보육료까지 삭감하는 곳이 생기면서 내년 누리과정 예산 파문이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누리과정 보육대란 상황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누리과정 예산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상보육은 국가가 책임질 테니 아이만 낳아달라”는 대선공약 이었다.
공약대로 국가가 누리과정 예산을 도맡았으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정부는 “국가재정이 어렵다”며 지난해 말 올해분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이 부담하도록 강제했다.
처음에 반발했던 교육감들 중 대다수는 보육대란을 막는 차원에서 지방채를 발행하는 방법으로 급한 불을 껐지만 당시 교육감들은 내년도 예산은 국가가 책임지고 편성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 예산 역시 결과적으로 교육청으로 또다시 떠넘기며 교육감들은 정부가 그간 보여준 모습은 누리과정 예산을 영구적으로 교육청이 책임지도록 하기 위한 꼼수로 판단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5월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고쳐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 지원은 교육감의 의무’라고 아예 법으로 못을 박았다. 협상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통보인 셈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최근 낸 성명에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은 법률적으로 교육감의 책임이 아닐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시·도교육청의 재원으로는 편성 자체를 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한 달 후 다가올 보육대란의 책임은 정부와 국회에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경고했다.
지방의회 입장도 강경해졌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달 내년도 예산안을 도의회에 제출하면서 유치원분 5100억원을 반영해 제출했으나 도의회 상임위원회가 “누리과정은 정부 책임인 만큼 교육청이 부담할 이유가 없다”며 전액 삭감해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강원도교육청은 내년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유치원 예산만 제출했으나 도의회가 6개월분 227억원을 감액했다. 강원도의회는 삭감된 예산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으로 편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광주시의회는 결의안을 통해 “누리과정 무상보육은 대통령 공약이자 정부에서 전면 실시해야 할 국가시책”이라며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겨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유치원 예산을 삭감해 다른 곳에 편성한 것이 아니라 유보금으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미 국회에서 3000억원을 우회지원하기로 확정됐다.
교육감들은 재정적 여력이 안된다고 하지만 정부는 어느 정도 여력이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가 당초 약속한 대로 누리과정 예산을 책임지지 않고, 시·도교육청에서도 국가 책임을 물어 현 태도를 유지하게 되면 내년 1월부터 어린이집과 유치원 보육대란이 현실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어린이집 보육예산 일부를 편성한 10개 시·도 가운데 경남·제주 등 2곳은 2개월분만 편성해 놓고 있어 ‘땜질’ 처방 수준이며 충남을 포함한 유치원 예산을 확보한 6곳 역시 6~8개월이다.
현행 보육료 지급체제는 학부모들이 아이행복카드로 결제하면 이 돈을 카드사에서 어린이집에 보육료로 주는 게 아니라 대행기관인 사회보장정보원(구 보건복지정보개발원)에서 지급한다. 국가기관이 사회보장정보원에 보육료를 예탁해 놓고 쓰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누리과정 예산이 확보돼 있지 않다고 해도 사회보장정보원이 예치된 자금을 활용해 사전에 지급해주면 보육대란을 피할 수 있다.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던 전북도교육청이 이런 해법으로 보육대란을 피했다.
그러나 현재처럼 다수의 교육청들이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한다면 사회보장정보원이 천문학적인 액수를 사전결제 처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학부모들이 보육료를 납부할 수도 없다. 누리과정은 법적으로 무상보육으로 규정돼 있어 보육료를 개인에게 받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보육료가 지급되지 않는 사태가 현실화하면 적지 않은 어린이집이 폐원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이 한 푼도 편성되지 않은 서울·광주·경기·전남 등 4개 지역은 유치원 폐원 사태도 예견되고 있어 보륙대란의 초일기에 대한 향후 정부대응의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