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론티어 코리안(새 경지를 개척하는 한국 선수들)… 메달보다 빛나는 새 길을 열다
프론티어 코리안(새 경지를 개척하는 한국 선수들)… 메달보다 빛나는 새 길을 열다
  • 김윤환
  • 승인 2012.08.1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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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연재, 리듬체조 불모지서 시청률 43% '신드롬'

양학선, 독보적 기술 '양학선' 넘어서는 '양2' 도전

펜싱, 1분당 80스텝 '발펜싱'으로 유럽의 벽 넘어

런던에서 한국 스포츠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프론티어 코리안'의 등장으로 더욱 환호했다.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기술로 세계 체조계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던 양학선(20·한체대), 리듬체조에 몇 종목이 있는지도 잘 몰랐던 수많은 국내 팬을 TV 앞에 불러 모은 리듬체조의 손연재(18·세종고), 비인기도 아닌 '무관심 종목' 대접을 받으면서도 올림픽 결선에 오른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의 박현선(24)·박현하(23·이상 K워터) 자매,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한국 신기록을 세운 남자 50km 경보의 박칠성(30·삼성전자), 남자 역도 94kg급 김민재(29·경북개발공사). 현란한 스텝과 손기술이 어우러진 독특한 한국형 펜싱으로 본고장 유럽을 깜짝 놀라게 한 펜싱 선수단도 한국 스포츠의 지평을 넓힌 개척자들이다.

한국 체조는 '세계 최고 기술 공장'

금메달을 목에 걸고 11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양학선의 첫마디는 "더 높은 난도의 기술이 나올지 모르니 새로운 기술 하나를 더 연마하겠다"는 것이었다. 양학선이 세계 정상에 오른 도마는 메달 획득 선수들의 점수가 1000분의 1 단위에서 엇갈리기도 하는 또 하나의 '극한(極限) 스포츠'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부터 세계 체조계가 양학선을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은 것은 그가 남들과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딴 'YANG Hak Seon'은 국제체조연맹(FIG) 채점 규정집에서 사상 최고 난도(7.4점)로 인정받는 독보적인 기술이다. 구름판을 밟고 도약해 착지할 때까지 2초 남짓한 시간에 양학선은 공중에서 몸을 세 바퀴(1080도)나 비틀어 회전한다. 남들보다 최소 반 바퀴를 더 도는 기술이다.

양학선의 신기술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비운(悲運)의 착지로 은메달에 머물렀던 여홍철(41·경희대 교수)이 있기에 가능했다. 당시 최고의 신기술이었던 '여2(공중에서 두 바퀴 반을 비틀어 도는 기술로 여홍철이 '여1'에 이어 개발한 기술)'를 구사했던 여홍철은 0.031점 차로 금메달을 놓쳤다. 여홍철의 광주체고 후배인 양학선은 "어려서부터 존경하는 여홍철 선배의 기술을 따라 하며 여2 기술로 아시아 정상에 올랐고, 이를 바탕으로 양학선 기술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양학선이 새로 장착하겠다는 신기술('양2')은 '양학선'에서 반 바퀴쯤 더 돌아 모두 1200도를 공중에서 회전하겠다는 것이다.

리듬체조 열기를 만든 손연재

손연재가 나온 11일 런던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선은 최고 40%대 TV 시청률이 나왔다.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밤 11시 1~5분 곤봉경기 때 KBS2(29.0%)와 MBC (14.3%) 합산 시청률이 43.3%나 됐다. 런던올림픽 시청률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리듬체조 개인 종합이 후프·볼·곤봉·리본 4개 종목으로 이뤄져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사람도 많았다.

10일 예선경기 곤봉연기 도중 손연재는 실수로 오른발 슈즈가 벗겨져 버렸다. 깜찍한 요정 같은 모습이었던 손연재의 발은 군데군데 피멍이 들어있고, 발가락은 울퉁불퉁했다. '스포츠 선수' 손연재의 모습을 처음 확인한 사람들은 트위터와 인터넷에 '가슴이 뭉클했네요' '남몰래 땀 흘려온 당신이 챔피언' 등의 글을 올렸다.

AP가 12일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리듬체조 사상 첫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예브게니아 카나에바(러시아) 대신 5위를 차지한 손연재의 모습을 올린 것도 '불모지' 한국에서 온 선수가 세계 정상급 연기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한국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사상 12년 만에 결선에 올라 12위를 한 박현선·박현하 자매도 묵묵히 좋아하는 일에 모든 걸 걸고 사는 이들이다. 이들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강호들을 제치고 동메달을 차지했지만, 야구의 금메달 바람에 묻혔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박현선은 "몇년 전부터 취미로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하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게 우리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세계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종목으로 질타받는 육상에서도 박칠성은 남자 50km 경보에서 3시간45분55초의 기록으로 작년에 자신이 세운 한국 기록을 1분 58초나 앞당겼다. 13위에 머물렀지만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육상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였다. 역도 남자 94kg급의 김민재는 8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올림픽에서 한국신기록을 들어올리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김민재는 인상에서 185kg을 들어 2년 전 자신이 세웠던 기록을 2kg 더 들어올렸다.

44개 펜싱 출전국 가운데 가장 많은 메달을 따낸 한국 펜싱(금 2·은 1·동 3)은 1분당 스텝 수가 최대 80회로 유럽 정상권 선수(40회)의 두 배 수준이 되는 한국 스타일 '발펜싱'으로 세계 펜싱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