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내라”
“화를 내라”
  • 보령뉴스
  • 승인 2010.12.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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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 되었더라” (마가복음 3:5)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화병이란 말을 써 왔다. 누적된 화에 기인한 모든 병을 가리키는 통칭이었다. 정신의학이 발달하면서 화병이란 한국의 고래어(古來語)가 과학적인 용어로 바뀌어 버렸다. 화의 저축은 무척 위험하다. 그것은 정신질환은 물론 신체적 질환의 직접적 원인이 되며 어린이의 경우는 균형 잃은 성격을 조성시키고 청소년의 경우는 파괴적 행동을 낳게 한다. 누적된 화는 가정을 균열 시키고 직장과 소속 공동체를 파괴시키고 모든 발전을 저지하는 악마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유명한 정신병학자인 메닌저(Karl Menninger)박사는 “속으로 눌러 넣은 화는 반드시 겉으로 나와 병이 된다”고 지적하였다. 화가 잘 조절되면 참으로 위대한 결실을 맺는다. 흔히 ‘용기’ 라고 하는 말은 잘 조절된 화를 말하는 것이다. 영웅이나 위인은 화를 안낸 사람이 아니라 화를 잘 조절해서 낸 사람이다. 만약에 인간에게서 화를 빼버린다고 하면 뼈를 빼버리는 것과 같다. 맥없이 주저앉는 무골인간(無骨人間) 이 되어 버린다. 운동선수가 자기의 실력을 최고로 발휘할 때는 적절하게 화가 났을 때라고 한다. 아주 화가 없거나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갔을 때는 자기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

성숙한 인간이란 화가 잘 조화된 상태를 말한다.
사실 역사상 수많은 개혁과 혁명과 개조가 화의 선용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처참한 영국의 감옥생활을 보고 존 하워드(John Howard)가 화를 낸 것이 감옥제도 개혁의 동기가 되었다. 노예들의 불행을 보고 윌리엄 개리슨(William L. Garrison)이 “노예들의 슬픈 얼굴은 하나님의 얼굴을 그늘지게 한다.”고 외치며 화를 폭발시킨 것이 노예해방 운동이 되었다.
링컨은 어느 날 한 흑인 여자가 남편과 어린 아이로부터 떼어져 팔려가면서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피가 나도록 자기의 손가락을 깨물며 “이건 잘못되었다!”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장 한복판에서 화를 터뜨렸던 것이다. 링컨의 화는 참으로 위대한 열매를 맺었다.

예수께서 노하셨다고 한다. 마치 이글거리는 눈으로 보듯이 매우 분노하신 상태를 암시하고 있다. 화를 내셨다고 한다. 이것이 마가복음서가 지닌 특징이다. 마가는 조금도 숨김없이 예수님의 감정을 표현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의 감정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표현된 적은 결코 없다. 주께서 화내심은 우리 인간의 도덕적 기본 덕목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조화를 이룬다.

예수님처럼 사랑에 동기를 두고 공의에 목적을 둔, 화를 적절히 낼 줄 아는 신념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처럼 잘 조화된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이다.

남포양항교회 강일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