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때 먹은 중국식 샤브샤브가 체한 듯했다. 호텔방으로 돌아온 남성은 계속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함께 있던 여성이 손가락을 따줬는데도 피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남성은 쓰러졌다.
여성이 중국의 119인 120에 황급히 전화해 밤 11시15분께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이미 그의 동공은 풀려있었고 맥박은 정지된 상태였다. 의사는 12월19일 새벽 12시15분 사망선고를 내렸다.
피해액이 4조원대에 이르는 ‘희대의 다단계 판매 사기’ 용의자 조희팔(55)씨. 경찰이 전한 그의 최후는 이렇게 쓸쓸한 객사였다. 2008년 12월10일 그가 중국으로 밀항한 지 42개월 만의 일이다.
조씨는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안마기와 건강용품 등 판매로 연 40%의 고수익을 올리게 해주겠다고 속여 3만5000여명의 피해자로부터 3조5000여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2008년 10월 고소를 당했다. 그가 두달여의 도피생활 끝에 중국으로 밀항함으로써 사건이 미궁에 빠진 듯했으나, 지난 2월 인터폴이 공범 ㄱ씨와 ㅊ씨를 체포하면서 다시 수사에 탄력이 붙던 상황이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1일 “조희팔씨가 중국에서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사망 증거로 응급진료기록부, 사망진단서, 화장증, 장례식 동영상 등을 제시했다. 조씨의 주검은 지난해 12월21일 화장돼, 유골만 12월23일 국내로 들어왔다. 지금은 한 공원묘지에 안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이 조씨의 죽음을 숨긴 이유에 대해 경찰은 “피해자들이 사망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유골 등을 훼손하거나 가족들에게 보복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씨는 중국으로 밀항 한 뒤 BMW 등 고급 외체자를 수시고 바꿔 타고 다니며, 중국 산둥성 옌타이시의 고급 빌라촌에서 거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에서는 가명을 사용했다. 여권상으로는 조선족이었다. 나이도 53살이라고 속였다.
조씨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범죄행위로 얻은 은닉 재산의 추적은 더욱 어려워졌다. 사기행각에 연루된 공무원이 있다는 의혹에 관한 수사도 답보에 빠질 전망이다.
한편 조씨의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도 남아있다. 유전자 감식을 통해 본인이 맞는지 최종 확인을 거쳐야 하는데, 화장을 한 유골은 유전자가 변형돼 확인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장례식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것은 ‘보여주기 위한 촬영’이 아니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51초의 짧은 장례식 동영상을 보면, 처음 유리관 속의 조씨 얼굴을 근접촬영한 뒤 그의 주검을 둘러싸고 흐느끼는 유족들의 모습이 나온다.
피해자 모임인 ‘전국 조희팔 피해자 채권단’ 인터넷 카페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경찰은 “우리도 처음엔 믿기지 않았지만, 지금 확인한 바로는 사망한 것이 확실하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