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강명미(Kang Myung-My)
성모 할머니가
분홍 책가방 등에 업고 경로당에 가십니다
ㄱㄴㄷ에 ㅏㅑㅓㅕ를 요리조리 끼워도 보고
뒤집었다가 비틀어보고 그러다 위 아래로 붙여가며
한글 블록을 만들어 봅니다
갸우뚱거리며 이리 저리 꿰 맞춰 본 블록들이
앞집이 되고 뒷산이 되고 샛강이 되면서
한 시절 거꾸로 흘러 갑니다
그러다 어느 능선에서 꽃 피고 새 우는 소리가
가까이 들려옵니다
캄캄하던 눈이 슬금슬금 열리면서
세상이 환해지고 귀가 뚫립니다
시험지에 동그라미 두 개가
잘 여문 호박으로 뒹굴어 안겨옵니다
어린 손녀 끌어다 놓고 받아 쓰기도 합니다
감자 오이 당근
일흔다섯 멀고 먼 아리랑 고개를
구불구불 가시던 외팔이 성모 할머니 성적이 80점,
남은 생이 환하게 보입니다
눈감고 살아온 생은 안 보입니다
저작권자 © 보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