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까막눈
[시] 까막눈
  • 이상원 기자
  • 승인 2019.04.0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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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강명미(Kang Myung-My)

성모 할머니가

분홍 책가방 등에 업고 경로당에 가십니다

ㄱㄴㄷ에 ㅏㅑㅓㅕ를 요리조리 끼워도 보고

뒤집었다가 비틀어보고 그러다 위 아래로 붙여가며

한글 블록을 만들어 봅니다

갸우뚱거리며 이리 저리 꿰 맞춰 본 블록들이

앞집이 되고 뒷산이 되고 샛강이 되면서

한 시절 거꾸로 흘러 갑니다

그러다 어느 능선에서 꽃 피고 새 우는 소리가

가까이 들려옵니다

캄캄하던 눈이 슬금슬금 열리면서

세상이 환해지고 귀가 뚫립니다

시험지에 동그라미 두 개가

잘 여문 호박으로 뒹굴어 안겨옵니다

어린 손녀 끌어다 놓고 받아 쓰기도 합니다

감자 오이 당근

일흔다섯 멀고 먼 아리랑 고개를

구불구불 가시던 외팔이 성모 할머니 성적이 80점,

남은 생이 환하게 보입니다

눈감고 살아온 생은 안 보입니다

강명미님, 시인, 충남 예산출생, 2014년 계간'시와 정신' 등단
시집 '엄니 조금만 기다려유' '무시래기의 꿈' '물꼬''A형 벚꽃'이 있다.
2014년 인천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한국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