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많은 유대인을 구한 독일인 쉰들러와 형생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후세 다쓰지 변호사가 그런 사람입니다. 한 두사람때문데 그 사람이 속해 있는 모두를 똑같은 사람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인이나 대기업의 기업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다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중에는 삭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좋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통해 일하실 줄 믿습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남겨놓으신 소수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음을 믿고 그들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자가 역사의 위기를 국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한다고 합니다. 창조적 소수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소수의 영적인 사람과 같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 창조적 소수자가 되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기독교인의 사명일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위해 남겨두실 영적인 사람, 혹은 창조적 소수자가로써의 삶인지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사람과 하나님 중에서 누구를 더 두려워 해야 하겠는가?’ 고 되묻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한다면 새로운 시대를 위해 앞장 설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사람, 창조적 소수자가 되려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세상을 경영하는 것은 세상의 권력자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창조적 소수자는 죽음보다 사명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수님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신의 사명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나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죽음으로 위협해도 예수님의 사명을 중단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잠깐의 순간으로 자나가는 죽음보다 영원히 남게 되는 사명의 열매가 더 중요합니다. 얼마나 오래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다 죽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승리하심을 의심하지 않고 확신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최후 승리를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무시하며 죽이려는 사람들의 입에서 예수님을 하남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기 전까지 예수님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믿고 확신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새시대를 여는데 앞장서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살리고 다음 시대를 만들어 갈 소수의 영적인 사람들을 남겨주십니다.
오늘 우리도 그런 영적인 사람들의 무리에 속해야 할 것입니다. 창조적 소수자가 되어 다음시대를 만들어가는데 필요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중앙감리교회 박세영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