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가 일본 이기자 기뻐한 일본인
한국축구가 일본 이기자 기뻐한 일본인
  • 김윤환
  • 승인 2012.08.1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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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올림픽축구국가대표팀 주장 구자철(23·아우크스부르크)은 1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해단식에서 이케다 세이고(52) 피지컬 코치에게 다가섰다. 구자철은 이케다 코치에게 일어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국 축구가 사상 첫 메달을 딸 수 있도록 지원한 숨은 조력자에 대한 감사의 인사였다.

이케다 코치는 2009년부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홍명보(43)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삼고초려 끝에 이케다 코치를 합류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홍 감독은 일본 J리그에서 활약할 당시 이케다 코치와 인연을 맺었고, 이케다 코치가 한국 대표팀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홍 감독은 이케다 코치에게 한국 대표팀에 합류해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 일본까지 세 차례나 찾아갔다. 이케다는 "일본인으로 한국 대표팀에서 일하는 것이 부담도 됐지만 홍 감독의 진심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다. 그는 2009년 청소년 대표팀에 합류한 후 한국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케다 코치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체력향상과 컨디션 유지를 담당하고 있다. 그가 지시하는 ‘공포의 왕복 달리기’는 선수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선수들은 한 차례 왕복할 때마다 10초가량의 휴식시간을 두고 20m 거리를 점점 속도를 올려가며 달린다. 대표팀은 이 훈련을 50차례나 반복하는 체력 테스트를 받았다. 이케다 코치의 체계적인 체력 관리는 한국 선수들이 체력전을 바탕으로 한 압박 축구를 펼치는 원동력이 됐다.

이케다 코치는 체력 관리뿐 아니라 대표팀이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팔을 걷고 나섰다. 병역 문제 등으로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에 합류한 박주영(27ㆍ아스날)의 가장 큰 걱정은 컨디션이었다. 당시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잡기 못해 공백 기간이 길어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홍 감독으로부터 고민을 전해들은 이케다 코치는 직접 박주영의 훈련 장소를 물색했다. 그는 J2리그 반포레 고후의 조후쿠 히로시 감독에게 전화해 고후 훈련 캠프장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부탁했다. 쉽지 않은 부탁이었지만 이케다 코치의 뜻은 받아들여졌다. 이케다 코치는 박주영과 함께 대표팀 소집 전까지 그의 개인 훈련을 담당했다. 구자철도 올림픽 전 개인 훈련을 위해 이케다 코치를 찾았을 만큼 그에 대한 한국 선수들의 신망은 두텁다.

운명의 장난처럼 3, 4위전이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결정된 후에도 이케다 코치는 흔들리지 않았다. 일본 누리꾼들은 그를 의식해 '한일전에서 일본이 지면 이케다가 책임져야 한다' '한국으로 귀화해서 두 번 다시는 일본에 돌아오지 말라' '일본의 전력이 이케다 때문에 누출 된다'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이케다 코치는 상대가 일본이라는 걸 의식하지 않고 평소와 같이 선수들을 독려했다. 특히 일본의 세키즈카 다카시 감독과 와세다 대학 선후배라는 사실이 알려져 관심을 모은 후엔 일부러 일본대표팀 지인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불필요한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일본에게 2-0 대승을 거두자 이케다 코치는 홍명보 감독과 얼싸 안고 기뻐했다. 이케다 코치는 언론 인터뷰에서 “홍명보호의 마지막 경기가 한일전이라니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한국과 계약할 때부터 각오했던 부분이며 내가 할 일은 전력을 다해 한국을 돕는 것이다. 그래서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그는 "선수들의 목에 메달을 걸어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지도자로서 보람을 느낀다"며 홍명보호를 함께 이끌었던 3년의 시간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