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연패 실패' 장미란, 도전이 더 아름다웠던 '역도 여제'
'2연패 실패' 장미란, 도전이 더 아름다웠던 '역도 여제'
  • 김윤환
  • 승인 2012.08.0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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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29, 고양시청)은 말을 잘한다.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자신의 의견을 잘 풀어내면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인터뷰 스킬을 자랑해 '운동선수 인터뷰의 표본'으로 불린다.

그런 장미란도 올림픽을 앞두고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장미란은 대회 전 열린 태릉선수촌 미디어데이에서 "금메달리스트라는 사실을 내려놓겠다"고 엄포를 놨다. '디펜딩 챔피언'이 아닌 '도전자'의 자리에서 런던에 서겠다는 것.

올림픽 2연패 도전이라는 부담감을 털어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다시 한 번 왕좌를 노리겠다는 그의 선언은 의미심장했다. 한 번 최고의 자리에 섰던 챔피언이 왕좌 사수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장미란의 기량이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나 장미란은 금메달과 올림픽 2연패를 강조하는 이들에게 번번이 "자신의 목표 기록 작성이 역도 선수의 가장 큰 목표일 것"이라며 구체적인 이야기를 피했다. 이미 장미란에게 중요한 것은 메달이나 2연패의 명예가 아니었다. 부상으로 엉망진창인 상태에서도 후배들의 출전권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그답게, 장미란은 자신이 도전해야 할 목표에 피하지 않고 맞섰을 뿐이다.

예상대로 신예들의 도전은 거침없고 무서웠다. 러시아의 타티아나 카시리나와 중국의 저우루루는 올림픽 신기록과 세계 신기록을 연속으로 갈아치우며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결국 장미란은 6일(이하 한국시간) 새벽 영국 런던의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에서 끝난 2012런던올림픽 여자 역도 75㎏이상급에서 자신의 기록에 한참 못 미치는 합계 289kg(인상 125kg 용상 164kg)을 들어올리는 데 그쳐 4위에 머물렀다.

벌써 10년의 시간을 대표팀에서 보낸 장미란은 비록 이번 대회에서 올림픽 2연패와 3대회 연속 메달이라는 금자탑을 쌓지는 못했지만 그보다 더 값진 도전의 가치를 보여줬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부상에 슬럼프에 빠지고, 잠시 주춤한 사이에 장미란이 인상과 합계에서 갖고 있던 세계기록을 갈아치운 저우루루와 카시리나라는 강력한 경쟁자도 등장했다.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에 장미란의 2연패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회의적인 시선도 많았다. 그러나 장미란은 주위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았다. 입버릇처럼 "도전자의 정신"을 강조했던 그답게 런던을 향해 그저 훈련을 계속할 뿐이었다.

신예들의 무서운 도전에 장미란은 10년의 시간에서 얻은 경험과 노련함을 무기로 맞섰다. 100%가 아닌 몸상태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끝까지 바벨을 들어올렸다. 마지막 시기 바벨을 떨어뜨린 후에도 장미란은 담담한 표정으로 관중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팬이 있기에 역도를 하는 것이 즐겁다"던 장미란, 비록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자기 자신을 이겨내기 위해 경기장에 섰던 그의 도전이 더욱 값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