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성탄
눈높이 성탄
  • 보령뉴스
  • 승인 2010.12.2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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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 공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학생들 눈높이로 내려와서 가르치는 공부를 <눈높이 공부>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 수준으로 내려가서 그 사람을 이끌어주는 공부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눈높이를 낮추신 이야기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오신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아들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눈높이를 낮추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눈높이를 낮추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랑의 눈높이를 낮추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도저히 사람이 될 수 없는 분이 사람이 되셔서 사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겠다고 사랑의 눈높이를 낮추시고 찾아 오셨습니다. 이것이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우리도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여야 겠습니다.

둘째로, 삶의 눈높이를 낮추신 사건입니다. 높고 귀한 천국을 떠나 낮고 추한 마굿간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살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잠깐 다녀간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영국에 있는 한 출판사에서 상금을 내걸고 <친구>라는 말의 정의를 독자들에게 공모한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를 정의하는 수천 통의 응모 엽서 가운데는 이런 정의가 있었습니다. <기쁨은 곱해 주고, 고통은 나눠 갖는 사람> <우리의 침묵을 이해하는 사람> <많은 동정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 많은 정의가 있었지만 친구에 대하여 일등한 정의는 이것입니다.
<온 세상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와 함께 하는 사람>
그런데 깊이 보면 온 세상이 다 떠나도 끝까지 나와 함께 남아 있을 친구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삶의 눈높이를 낮추시려고 오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친히 오신 것은 구원의 눈높이를 낮추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우리를 구원시켜 주시려고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성탄의 축복이 온 누리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구세군대천교회 최일규사관(보령시기독교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