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약(儉約)은 검소와 절약을 합성한 단어이다. 검약은 절약(節約)하는 가운데 꼭 필요할 때만 돈을 쓰고 나머지는 저축(貯蓄)하는 자세이다. 검약은 돈이 있지만 절제할 줄 아는 것이며 무조건 아끼는 것이 아니라 제때 쓸 곳에 쓰는 것이다. 돈이 있어도 함부로 쓰지 않고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은 그만큼의 기품이 흐른다. 또 돈이 많지만 아낄 줄 아는 자세는 또 하나의 인격(人格)이다.
반면 오늘날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검약(儉約)은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검약하지 않는 부자는 진정(眞正)한 부자(富者)가 아니다. 실제로 한 국가의 부(富)는 그 나라 리더(leader)의 검약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표적으로 검약한 국가 리더로는 중국의 원자바오 전 총리와 미국의 포드 전 대통령, 우리나라의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이 있고, 재벌로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 미국의 부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과 투자의 달인 워렌 버핏 등이 있다. 이외에도 많은 리더들이 있지만 세 명의 구체적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포드 전 미국 대통령 방한 때의 일이다. 당시 포드 대통령은 조선호텔에 묵었는데 그때 호텔 지하 세탁부에서 다림질을 하던 사람들이 포드의 옷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양복바지에는 구멍이 나 있었고 윗옷은 안감 실이 터져 있었다. 호텔 세탁부는 도저히 그냥 다릴 수가 없어서 실로 꿰맨 후에야 다림질을 했다고 한다. 그는 부자 나라의 대통령이요, 그 자신도 엄청난 거부였음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의 전속 이발사는 그의 검약과 관련해 이런 증언을 남겼다. 그 양반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이발하실 때 보니 러닝셔츠를 입었는데 낡아서 목 부분이 해졌고 좀이 슨 것처럼 군데군데 작은 구멍이 나 있었고, 허리띠는 몇십 년을 사용했는지 두세 겹 가죽이 떨어져 따로 놀고 구멍이 늘어나 연필자루가 드나들 정도였지요.
누가 뭐라고 해도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검약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그가 변기통의 물을 아끼려고 청와대 안 자신이 쓰는 욕실 변기의 물통에 벽돌 한 장을 넣어 두었던 것을 그의 사후에 보안사 수사팀이 발견해 세간의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기업인으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도 검약의 실천가(實踐家)였다. 그가 30년 이상 살아온 종로구 청운동 자택 거실(居室)의 소파는 20년 이상 사용해 가죽이 해졌고 의자와 테이블의 목재 부분은 칠이 벗겨지거나 여기저기 수리하고 손본 자국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집에는 그 흔한 그림이나 장식품(裝飾品) 하나도 없었다. 텔레비전은 슬림형 벽걸이 TV는커녕 요즘엔 찾아보기도 힘든 17인치 소형이었다고 한다. 과연 여기가 대한민국(大韓民國) 최고 재벌이 살던 거실인가 의심할 정도였다고 한다.
부모의 사랑으로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고, 때가 되면 혼인하여 달콤한 신혼생활(新婚生活)을 하고, 얼마 후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열심히 기르고, 언젠가는 은퇴하여 인생의 황혼기를 맞으며, 천명(天命)을 받아 생(生)을 마감하는 것을 아마도 인간의 보편적 삶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각종 사고와 질병으로 일찍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부모를 잘 만나 부족함 없이 살고 자신의 꿈을 이루며, 속 썩이는 배우자나 자식이 없고, 건강하게 장수하고, 즐겁게 살다가 고통 없이 편안히 죽는다면, 이는 누구나 바라는 꿈같은 삶이다. 어디 그런 꿈같은 삶이 쉽게 찾아올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아마도 상당수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질환이나 소아마비 등으로 고통받는 아이, 부모의 요절로 어쩔 수 없이 소년ㆍ소녀 가장이 된 아이,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사고나 질병으로 죽는 아이 등 고난의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그러면 편안히 잘사는 자들과 고난의 삶을 사는 자들의 현격한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과연 국가가 이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부모나 환경을 원망해야 하는가. 아니면 현재의 충분치 않은 사회안전망에 의존해야 하는가. 현실적으로 해결책은 그리 녹록치 않다. 위안을 삼자면 그래도 북한이나 아프리카 같은 최빈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과 몇 배의 고통(苦痛)이 수반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어느 정도의 꿈을 성취할 수 있는 정치ㆍ경제ㆍ사회제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확실하게 공평(公平)한 것이 있다면, 인간의 수명은 길어야 120세라는 것이다. 수조원의 재산가나 절대 권력자도, 인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도, 천재(天才)나 미인(美人)도 모두가 나이가 들면 죽는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공평한 것인가. 세상을 뒤흔들던 이들도 때가 되면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잘살려고 고군분투(孤軍奮鬪)하지만 결국은 한 줌의 재가 되거나 흙에 묻힘으로써 허망한 인생을 마감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특별한 존재는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남을 괴롭히고 빼앗고 속이고 죽이는 것들이 얼마나 한심한 짓인가.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우리의 이러한 이기적 삶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 양심적으로 산다면, 그것이 바로 천국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양심(良心)을 회복(回復)할 수가 있을까. 죽음을 늘 생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삶이 필요하다. 죽어가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죽음 앞에선 늘 경건(敬虔)하고 엄숙해진다.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남을 배려하고 겸손히 살아야 한다. 그래야 갑자기 죽음이 닥쳐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그동안의 삶을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늘 죽음을 생각하고 양심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시인․수필가 김병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