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정직하게 질문하는 일이 절실합니다. 내가 갖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을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대답 세 가지가 서로 어울리는지 다시 물어보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그런데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묻지 말고 누구를 원하는지 물으면 답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는 누구를 원하는지 분명하게 말한 분이었습니다. 오늘 빌립보서 본문 말씀으로 세 가지 말씀드립니다.
첫째로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유익했던 것을 배설물로 여겨야 합니다. 사람들은 재물을 명예를 자녀들을 혹 신념을 유익한 것으로 소중하게 여깁니다. 바울은 그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배설물로 여긴 분이었습니다. 누구도 몸에서 배설물이 나오는 것을 아깝게 여기며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몸에서 배설물이 나오면 시원하게 여깁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 유익하게 여겼던 것을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없어졌는데도 아쉬워하지 않고 시원하게 여겼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잃고 그리스도를 얻었는데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하지는 않습니까?
둘째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 죽으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죽음은 뺏기고 꺾기는 일입니다. 누구도 뺏기거나 꺾기는 일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때로 상실과 좌절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감내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영적 진실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걷는 믿음의 길 끝에 아름다운 보상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기독교는 기복을 거부하지만, 보상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보상,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위해 푯대이신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고 달려가야 합니다. 뒤에 있는 일은 잊어 버려야 합니다. 잘 잊혀지지 않는다면 상처를 용서하고 잘못을 회개해야 합니다. 용서와 회개가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고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위해 푯대이신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