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삶에 고난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것을 불가능한 바람입니다. 고난은 삶의 필수과목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고난이 닥쳤는지 생각해 보지만 그것은 알기 어렵습니다. 많은 것들이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또 고난의 이유를 묻는 것은 과거지향적입니다. 그래서 별로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고난을 주신 목적에 대하여, 물어봐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 고난을 주셨을까요? 미래지향적인 물음입니다. 이렇게 물으면 고난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늘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위해 인생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지 탁월한 생각을 드러냅니다.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립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을 주십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판 것은 잘못된 일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 잘못을 선용하셔서 야곱 온 가족의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목적을 이루십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고난이 나와 내 주변 분들의 생명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일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 고난을 주십니다. 고난을 겪고 성장한 이들은 사람의 잘못에 대해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안에서 일어난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믿음 없이 보면 우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연을 섭리하셔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이루시고 보게 하시고 믿음을 성장시키십니다. 그래서 고난은 믿음을 성장시키는 하나님의 도구가 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용서와 화해를 위해 고난을 주십니다. 요셉과 형들이 십수년 만에 얼굴을 보고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서로 대화합니다. 요셉의 용서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직 형들의 회개는 미심쩍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해를 향한 발걸음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당한 고난은 용서와 화해를 위한 하나님의 안배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해석할 길 없는 고난 받고 계십니까? 질병의 고난, 재정적인 고난, 관계의 고난, 자녀들의 고난 등등 다양합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고난의 목적을 물으십시오. 생명을 구원하시고, 믿음을 성장시키시고, 용서와 화해를 위해 하나님께서 놀랍게 섭리하고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고난에 압도되지 말고 그 목적을 깨달아 고난을 이겨내고 더 나은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