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그리스인의 평균수명은 19세였고, 16세기 유럽인의 평균수명은 21세에 불과했다고 한다. 요즘과 비교하면 어린아이의 수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발걸음을 떼기까지는 보통 1년이 걸린다. 게다가 스스로 먹이를 취하거나 적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2세를 출산할 수 있는 나이까지 성장하려면 최소한 15세는 되어야 할 것이다.
원시시대 인간의 평균수명(平均壽命)이 20세 안팎이었다고 할 때, 인간이 생태계에서 적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고 종족을 보존하기에는 턱없이 불리해 보인다. 그렇지만 인간은 모든 동물과의 생존경쟁(生存競爭)에서 살아남았고 꾸준히 수명을 늘려왔다. 지금의 인류(人類)에게는 더 이상 생존을 위협하는 적은 인간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인류의 가장 큰 소망 중의 하나는 누가 뭐래도 장수(長壽)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진시황(秦始皇)의 불로초(不老草)처럼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실제적인 과학적 성과로 나타나기도 해서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3세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수치(數値)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83세 이상을 산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인간은 그토록 오랫동안 꿈꿔왔던 장수(長壽)가 단순히 수명(壽命)을 늘리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될 것 같다.
인간에게 있어서 고통(苦痛)은 오랫동안 기억되고 기쁨은 찰나(刹那)에 스쳐간다. 그래서 인간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모든 가능성에 대해 불안과 두려움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벌써 올해의 가을도 어느덧 저물어간다. 초록빛 무성하던 감나무가 빠알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채 수척(瘦瘠)해졌다. 가지가 꺾어질 듯 풍성한 열매를 매달기 위해 모진 풍상(風霜)에 시달린 삶의 세월, 어찌 감나무뿐이겠는가.
지난날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간다. 이젠 모두 가버린 세월이 됐지만 내게도 수많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연륜으로 쌓였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열매는 무엇인가. 모두 거두어 저장해야 될 보람과 가치뿐인가. 아니면 바람에 날려 보낼 허무한 쭉정이뿐인가. 항상 허덕이며 살아온 범부들의 일생, 어느 누가 이 가을 앞에 당당할 수 있으랴.
내 존재 가치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세월의 존재를 부정하고 거역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월이 고장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겁의 세월도 알고 보면 순간의 연속이다. 내일은 오늘이 되고 오늘은 어제가 된다. 젊은이일수록 순간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평생(平生)을 같이한 내 친구는 그림자와 상념뿐이다. 상념 한 보따리 짊어지고 국사봉을 오른다.
팔순(八旬)의 노인 걸음으로 걷지만, 숲은 나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고 산림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이다.
다급해진 햇살은 벌써 중천을 지난다. 바쁜 바람결에 아름다운 단풍잎들이 향방 없이 휘날린다.
맑은 공기 마시고 내 그림자 데리고 국사봉 정상에서 내려올 때면, 인생(人生)의 허무(虛無)를 바람에 살며시 날려 보낸다.
모든 것을 외면한 듯 그림자처럼 가만가만 세월의 강을 건너온 소심한 나의 심안(心眼)에 이슬이 맺힌다. 밤하늘에 뜬 달은 호수에 빠져도 파문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