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녹녹하지 않습니다.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래서 열심히 사는 것을 뭐라 탓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저 열심히만 사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만 살다가 정작 어디로 가는 것인지 어디쯤 온 것인지 모를 경우가 있습니다. 또 열심히만 살다가 착각하게 되는 중요한 것 하나는 지금 이 세상이 전부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이 필요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바울 사도가 부활에 대해 써 놓은 부분입니다. 부활장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잘 들으면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로 우리는 새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지닌 몸은 연약하고 썩게 될 몸입니다. 그러나 부활 때에는 전혀 다른 몸을 지니게 됩니다. 씨앗은 식물의 본 형체가 아닙니다. 수박씨나 해바라기씨는 본 형체와 너무도 다릅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씨앗입니다. 부활 때에 우리가 받을 몸은 씨앗이 본 형체와 다르듯이 전혀 다른 몸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피조물들은 다 서로 다른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 짐승의 육체, 새의 육체, 물고기의 육체가 다 다릅니다. 세상에 속한 것의 육체도 이처럼 다른데 하늘에 속한 형체가 얼마나 다를지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우리가 부활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저마다 서로 다른 영광을 받게 됩니다. 부활 이후의 삶, 천국 영생의 삶은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우신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가장 알맞게 서로 다른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 별과별의 영광이 저마다 다르듯이 말입니다.
넷째로 부활은 심고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부활 이후의 삶에 대해서 아름답게 묘사한 바울 사도는 우리가 부활 생명을 기대하며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것은 심는 삶입니다. 씨앗인 우리의 삶이 부활 이후에 찬란하게 펼쳐집니다. 그러나 그 삶은 지금 여기서 우리가 심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공의는 부활 이후의 찬란한 삶에도 적용됩니다. 그래서 여기서 심고 거기서 찬란하게 거두게 됩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부지런히 심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가 전부 아닙니다. 우리는 거둘 영광을 기대하며 지금 여기서 심어 부활 이후에 찬란하게 거두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