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가 아닌 생활의 언어, 교리가 아닌 살아내는 지혜.
-점서(占書)가 아닌 국가유산 기반 인문 자산으로 재해석
대한민국의 국기 태극기는1882년 제정 당시 단순한 국기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
건(乾)·곤(坤)·감(坎)·리(離), 하늘과 땅, 음과 양, 순환과 조화를 상징하는 태극은 곧 우리 민족의 세계관이자 삶의 철학이었다.
그러나 그 철학을 문자와 학문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이는 극소수였다. 구한말 조선의 대다수 민중은 글을 알지 못했고, 주역과 태극 사상은 여전히 먼 이야기였다.
이 거대한 간극을 메우기 위해 실학자 토정 이지함 선생은 설교가 아닌 생활의 언어, 교리가 아닌 살아내는 지혜를 담은 『토정비결 土亭秘訣』이라는 위대한 결과물을 탄생시켰다..
오늘날 토정비결은 흔히 ‘점서(占書)’로 분류된다.
그러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해방과 6·25 전쟁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책이 민중에게 수행해온 역할은 결코 미신의 영역이 아니었다.
토정비결은 글을 모르던 백성에게 태극의 질서와 삶의 균형을 전하던 생활 인문서였고, 신분과 성별로 구획된 사회 속에서도 민중이 스스로 삶을 버텨내기 위한 최소한의 철학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희망이 사라졌던 시대, 토정비결은 예언이 아니라 질문을 던졌다.
“이 해(歲)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시작할 것인가.”
농경사회에서 정초(正初), 한 해의 시작에 삶의 흐름을 살피는 행위는 단순한 점복(占)이 아니었다. 무너진 질서 속에서도 다시 삶의 리듬을 세우려는 의지였고, 내일이 있다는 감각을 붙잡는 민중의 방식이 되고, 민중의 아리랑이 되어 울분의 노래가 아니라, 견딤과 회복의 노래로 이어왔다.
토정비결은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오늘을 살아내는 방식’으로 번역해 주는 매개였다. 민중은 토정비결을 통해 다시 한 해를 시작했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끈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민중에서 민중으로 이어진 삶의 언어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태극의 사상은 억압됐고, 해방 이후 급격한 근대화 속에서 전통은 ‘낡은 것’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토정비결은 사라지지 않았다. 『국민보감』과 가정용 생활서, 연례 운세서의 형태로 변주되며 민중 곁에 남았다. 이는 태극 사상이 미신이 아니라, 삶의 균형을 찾으려는 집단적 기억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그 질문을 보령이 다시 꺼내 들고 있다.
토정 이지함의 사상적 기반이자 활동 무대였던 보령에서, 보령국가유산지킴이봉사단(단장 임인식)은 토정비결을 점서가 아닌 국가유산 기반 인문 자산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이는 전통의 관광화가 아니라, 사람 중심 도시 철학을 국가유산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다.
보령이 주목하는 것은 미래의 예언이 아니다.
토정비결이 던졌던 근본 질문,“이 해(歲)를 어떻게 살 것인가”,“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AI가 답을 계산하는 시대에, 토정비결은 오히려 질문을 남기는 유산으로 다시 읽힌다. 이는 토정 이지함이 실학자이자 애민사상가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보령의 국가유산 활용은 축제나 전시에 머물지 않는다. 시민 참여형 인문 프로그램, 청년과 연결된 콘텐츠, AI 시대의 철학적 성찰까지 아우르며 ‘살아 있는 유산’을 지향한다.
토정비결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그것은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견디고 살아내려는 마음의 기록이다. 태극기가 민족의 상징이라면, 토정비결은 민중의 언어였다.
보령에서 다시 읽히는 토정 이지함의 유산은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다.
국가유산은 과거를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도 조용히, 민중의 아리랑처럼 이어지고 있다.
자료 공동 제공 : 보령국가유산지킴이봉사단,토정마루 이행수 대표,백남균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 만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