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했던 국군 형제, 죽어서 한 자리에

- 60년 만에 국립묘지에서 다시 만난 형

2011-04-06     이상원 기자

19세 어린 나이로 6․25전쟁에 형을 뒤따라 입대한 뒤 전사하여 당시 전투현장에 묻혀있던 국군 용사가 60년만에 지나 형 곁에 나란히 안장된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은 작년 10월 말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소재 백석산(해발 1,142m) 남동쪽 3km 지점에서 인식표와 함께 발굴된 국군전사자 유해에 대해 유가족을 추적하여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 결과, 국군 7사단 3연대 3대대 소속 故 이천우(당시 20세) 이등중사(現 병장, 추서진급)로 확인하였다.
故 이천우 이등중사는 6․25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였던 낙동강전투의 막바지인 1950년 9월 초 형이 입대한지 한 달 만에 홀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원입대하였다. 그후 1년여 동안 수도 서울 수복전투와 북진의 대열에 서서 평양탈환작전, 개천-덕천전투, 하진부리전투 등에 투입되었다가 1951년 9월 25일 백석산 탈환을 눈앞에 둔 채 무명 901고지 부근 능선에서 안타깝게 전사했다.

가난한 농촌 집안(경북 청도)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故 이천우 이등중사는 어려운 가정 형편상 비록 배우지는 못하였으나 총명하고 책임감이 유달리 강했던 젊은이로, 전사 후 1954년에 2개의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되었던 사실로 볼 때 참가했던 여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故 이천우 이등중사의 바로 위 형인 故 이만우 하사는 1950년 8월 1사단에 입대하여 낙동강전투, 평양탈환작전을 거쳐 1951년 5월 경기도 고양, 봉일천전투에서 전사했으며, 동생과 같은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된 뒤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에 안장되었으나 가족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60여 년을 지내왔다.

5일 국방부는, 새롭게 마련된 국방부의 신원확인 통보절차에 따라 육군 제53사단장과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장이 함께 유가족 자택을 방문해 국방부장관이 발행한 신원확인 통지서와 위로패, 유품 등을 전달했다. 이를 접한 유가족 장조카 이명덕(61세, 부산 거주)씨는 “두 아들을 전장에 보내고 시신마저 찾지 못해 눈물로 지내셨던 할머니의 한숨 소리를 지금도 기억한다.”면서, “두 분의 삼촌을 동시에 찾았다는 것에 그동안 맺혔던 집안의 恨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것 같다.”며 유일한 혈육으로써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국방부는 이러한 형제의 기구한 사연에 대해 “어린 나이에도 불구, 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한 뒤 무공을 세우고 안타깝게 전사한 두 형제의 사연은 결코 흔치 않은 국민적 귀감이 될만한 사례”라며, 애틋한 형제애와 이들의 고귀한 희생의 의미를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차원에서 故 이천우 이등중사의 유해는 기존 방침에 따라 대전현충원에 안장하지 않고 서울현충원에 있는 형 故 이만우 하사의 묘 옆에 나란히 안장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현충원에 부부가 아닌 혈육이 함께 안장된 것은, 지난 2007년 7월 서해 야간비행 중 순직한 故 박인철 대위가 1984년 팀스피리트 훈련 중 순직한 아버지 故 박명렬 소령 옆에 함께 묻힌 이래, 이번이 두 번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