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파면까지 스스로 발목 잡은 결정적 악수들
-'최순실 인정' 1차 담화..'조건부 사퇴' 3차 담화
박근혜 대통령의 동물적 정치 감각은 이번 탄핵 정국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악수(惡手)를 반복하며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이란 불명예를 피할 수도 있는 기회를 결국 놓치고 말았다.
지난해 10월24일 JTBC가 최씨의 대통령 연설문을 포함해 국정 개입 정황이 담긴 태블릿PC를 보도하자 청와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보도 다음날에도 이전과 달리 이를 부인하지 않은 채 상황을 파악 중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청와대는 침묵을 지켰고 박 대통령은 직접 나섰다. 박 대통령은 다음날인 25일 1차 대국민 담화를 갖고 연설문이나 홍보 등 분야에 대한 최씨의 역할을 인정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제 입장을 진솔하게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좀 더 꼼꼼하게 챙겨 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고 했지만 국민들은 박 대통령이 인정한 최씨 존재에 경악했고 민심은 급격하게 돌아섰다.
이후 청와대 참모진 사이에서도 1차 대국민 담화에서 보인 대응 방식을 후회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왔다. 보도 하루 만에 너무 빨리 박 대통령이 최씨 역할을 직접 언급해 사태 악화를 불러왔다는 판단에서였다.
박 대통령이 자진 사퇴해 탄핵만은 피하는 방법도 있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29일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며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야당은 박 대통령의 조건부 하야 의사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박 대통령이 거취 문제를 국회에 넘기고 개헌까지 바라보는 꼼수를 발휘했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 대표는 다음날인 30일 박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여야 협상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 3차 담화 내용이 탄핵을 지연하려는 정략적 의도가 의도만 있다는 판단이었다.
결국 박 대통령 탄핵안은 지난해 12월9일 국회 문턱을 넘었고 이날 선고까지 이어지게 됐다.
탄핵안 가결 이후 박 대통령의 장외 여론전이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다는 분석도 있다. 검찰과 특별검사팀 조사를 받겠다고 약속했다가 뒤집고, 헌법재판소에서 직접 소명할 수 있는 기회도 저버린 채 지지층을 겨냥한 주장에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적 시점들에도 본질적인 문제는 박 대통령이 자초한 최씨 국정 농단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 대통령이 헌법을 지키지 않아 파면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밖에 없었단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