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빈 집을 채웁시다

- 눅46강 11:14~28, 중앙감리교회 박세영 담임목사

2015-03-03     김윤환 기자

3월 첫주 금주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을 못하게 하는 한 귀신을 내어 쫓으셨는데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세 가지 였습니다.

첫째로는 예수님께서 귀신의 힘을 빌려 귀신을 내어 쫓았다고 말하며 예수님을 무조건 깎아 내리려는 사람들과 둘째로 또 다른 표적을 구하며 의심하는 사람들 그리고 셋째로 그저 기적을 보고 놀라기만 하는 구경꾼들 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기적과 능력을 보고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들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반대하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물을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본다는 말처럼 사람의 행동과 말은 자기 마음에 채워진 것에 영향을 받고 통제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을 때도 사람들의 마음에는 불신의 마음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안식일을 어겼다는 이유로 트집만 잡습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 속에 채워진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의 방향과 방법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므로 사람의 마음 속에 무엇이 채워져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금주 본문은 우리들로 하여금 중요한 영적 교훈 두 가지를 깨닫게 해주는데 첫째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치명적인 죄를 선택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3장 28~30절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가 되고 성령훼방죄는 영원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치명적인 죄가 된다고 말씀 하십니다.

인본주의적 가치관이 편만하여 있는 지금 이 시대에 그것이 겉으로는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에겐 독이 됩니다. 우리가 선악과의 사건을 통해서 잘 깨달을 수 있듯이 진정한 사람의 가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순종하게 될 때 비로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야만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은 나를 가장 높이며 내 인생의 가치를 가장 크게 만들고 용서 받지 못하는 죄를 짓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하는 것은 영적인 세계에서 중립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금주 본문 23절과 '돌아 온 귀신의 비유'를 통해 말씀을 하셨듯이 영적인 중립지대는 없으며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탄을 섬기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도 여호수아서 24장 15절을 통해 영적인 선택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 영혼의 집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그에 대한 정답은 적극적인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의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며 둘째로는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의 말씀대로 삶 속에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등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살아 가는 것입니다.

금주 우리들도 예수님께서 결론으로 말씀을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복된 자'가 되어 영혼의 집에 하나님을 모시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중앙감리교회 박세영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