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막내급 기자들, 세월호 침몰 참사 보도 반성 글

- 지상파 3사, 여권 부적절 언행은 눈감고 정부 대변인 노릇 예사

2014-05-10     보령뉴스

공영방송 KBS의 막내급 기자들이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한 자사 보도를 반성하는 글을 올렸다.

7일 언론노조 KBS본부에 따르면 2012, 13년 입사한 38~40기 취재ㆍ촬영기자들은 사내 보도정보시스템에 '반성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사고 현장을 가지 않고 리포트를 작성했고 실종자 가족을 취재하지 않은 채 기사를 썼으며 정부에 우호적인 보도를 했다'고 자사 보도의 문제점을 고백했다.

이 글을 작성한 10명의 기자 중 한 명은 "대통령(의 팽목항) 방문 당시의 혼란스러움과 분노를 다루지 않았다"며 "육성이 아닌 컴퓨터그래픽(CG)으로 처리된 대통령의 위로와 당부만 있었다"고 썼다.

"비판 여론이 들끓는데도 연일 눈물 짜내기식 인터뷰와 취재를 지시 받았다"며 "이것이 우리가 세월호 사건을 보도하며 보여 줄 수 있는 최선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글을 남긴 기자도 있었다. 이 기자는 "팽목항에선 KBS 로고가 박힌 잠바를 입는 것조차 두렵다"고 했다. 다른 기자는 "가장 우수하고 풍부한 인력과 장비는 정부 발표를 검증하고 비판하라고 국민들로부터 받은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이들은 이날 오후 "수뇌부가 어린 기자들의 돌출행동으로 치부하려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해 세월호 보도를 반성하는 대토론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이에 보도본부의 한 관계자는 "후배 기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듣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토론회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상파 3사의 일그러진 민낯
                            여권 부적절 언행은 눈감고 정부 대변인 노릇 예사로"

                                                                                                        KBS 황수현기자

세월호 사고에서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건 정부의 무능과 선박업계의 초대형 비리뿐이 아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내보내 사회적 불신을 확산시킨 언론에게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언론기관 중 국가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는 신뢰도에서 특히 큰 타격을 받았다. KBS는 사고 발생 사흘째인 지난달 18일 '뉴스특보'에서 '선내 엉켜 있는 시신 다수 확인'이라는 자막과 함께 관련 소식을 내보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이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오보로 확인됐지만 이후 불붙듯 일어난 유언비어와 음모론의 시발점이 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전체회의를 열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방송, 시청자를 혼동케 하고 지나치게 자극적인 언어로 피해자 등에게 불안감을 조성했다는 이유로 KBS에 경고를 결정했다.

MBC는 사고 당일 승객들의 사망 사실이 미처 확인되기도 전에 보상금을 계산해 시청자들을 경악케 했다. MBC는 이날 '이브닝뉴스'에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단체 여행자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상해사망 1억원, 상해치료비 500만원, 통원치료비 15만원, 휴대폰 분실 20만원 등을 보상한다"고 전했다. 구조작업이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은 18일 '뉴스데스크'에서는 선박 인양 방법을 상세히 보도해 실종자 가족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CNN방송은 수온 변화에 따른 생존 가능성을 뉴스로 다뤄 대조를 보였다.

구조 작업이 성과 없이 길어지면서 대중의 분노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KBS '뉴스9'는 '박 대통령, 참담한 심정…구조 최선 다해야', '목숨 건 수색에 잠수병 10여명 치료 중' 등의 기사를 연일 내보내며 정부의 노력을 강조했다. 지난달 17일 박 대통령의 진도 방문 소식을 당일과 그 다음날, 이틀 연속 다루기도 했다.

반면 참사와 관련한 여당 인사들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서는 축소 또는 은폐를 시도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MBC는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실종자 가족이 모인 체육관에서 라면을 먹어 논란을 일으켰으나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아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실종자 가족들의 행태를 문제 삼으며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고 주장했을 때도 메인뉴스에 이를 내보내지 않았다. 대신 세월호 사고와 직접적 연관이 없으면서도 실종자 가족 대표를 맡았던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인사와 관련해서는 '실종자 대표, 가족 아닌 정치인'이라는 제목으로 22일 단독 리포트를 내보냈다. 안광한 MBC 사장은 25일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2002년 효순∙미선양 방송이 절제를 잃고 선동적으로 증폭되어 국가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데 비해, 이번 방송은 국민정서와 교감하고 한국사회의 격을 높여야 한다는 교훈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자화자찬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외신들이 일제히 '박 대통령의 위기관리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시각으로 이번 사고를 분석했으나 지상파 방송에서는 이런 논조를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28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71%(18일)에서 54%(24일)로 급락했다고 발표했지만 지상파 방송 3사 모두 이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언론이 의도적으로 왜곡된 사실을 내보낸다는 의심이 확산됐으며 이 같은 불신은 결국 지상파가 아닌 종편을 통해 표출됐다. 실종된 단원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는 지난달 27일 JTBC '뉴스9'와의 인터뷰에서 "배가 침몰되는 당일부터 조금만 사실적이고 비판적인 보도를 언론들이 내보냈더라면 아이를 살아서 만났을 거란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며 "가장 중요한 그 2, 3일 동안에 방송은 눈을 감아버렸다"고 침통해 했다.

                                       "손석희의 사과와 백남준"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나는 분노한다. 한쪽이 기울어져 가라앉는 세월호를 보며, 놀랐다. 최초의 놀라움은 탑승자에 비해 적은 구조자의 숫자에 커졌다. 특히 사건 발생 후 드러난 세월호를 둘러싼 관계자들의 무능과 무책임, 부패와 부도덕 등이 버무려진 내 조국의 민낯은 엉망진창이었다. 끔찍해서 도저히 볼 수 없는 장면들이 텔레비전에서 쉴 새 없이 쏟아졌지만, 결과적으로 정부는 단 한 명의 실종자도 바닷속에서 구해오지 못했다. 변명과 핑계를 늘어놓았다. 희망의 속보에 매달려 있던 실종자 가족들은 거듭 좌절했다.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답답함, 억울함과 안타까움 등으로 크게 파도쳤다. 내가 위험에 빠지면 국가가 나서서 구해주리라는 상식과 믿음은 무참하게 깨졌고, 국민들은 분노했다. 이번 사고의 실체적 진실은 밝혀지겠지만, 대통령과 정부는 그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비정치적인 사고가 정치적인 사건이 될 조짐이다.

방송은 속도의 싸움이다. 같은 내용도 먼저 방송하는 쪽이 이긴다. 내용이 더 자극적일수록 시청자를 잡는다. 그래서 사지(死地)를 갓 벗어난 어린 학생들에게 방송국 카메라를 잔인하게 들이댔다. 피해자와 희생자의 입장과 심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의 상처가 울음으로 크게 터질수록 방송은 널리 퍼질 것이었다. 이런 비인간적인 처사에 많은 시청자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대부분 변명만 해댔고,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딱 한 명만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손석희 아나운서이다. 트윗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널리 퍼진 후에야 나는 그의 사과 방송을 보았다. 그는 정갈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후배 앵커의 잘못에 대해 어떤 변명이나 해명도 필요치 않다며, 그것은 선임자이자 책임자인 자신이 후배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탓이 가장 크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감동했다. 날카롭던 분노는 다소 누그러졌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 낯설었다.

한 조직의 수장이 부하의 잘못으로 사과한 것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는 상사의 잘못을 대신 떠안고 희생당하는 부하의 모습이 훨씬 더 익숙해졌다. MB정부 이후 굵직한 정치 사건들 대부분 말단 직원 개인의 일탈적 행위로 만들어서 끝냈다. 그 일을 지시했을 윗선은 사법 처리는커녕 검찰이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검찰 결과를 믿지 않았고, 불신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은 책임자가 자신의 안위만 책임지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부하의 허물을, 그를 제대로 이끌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라고 진솔하게 말하는 손석희 아나운서의 모습은 낯설었다. 그것이 원칙이자 상식이었던 시대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특히, 사건 당일 사망자의 예상 보험금을 재빨리 알려주는 극우 방송의 행태는 개탄스럽다. 희생자와 실종자의 가족은 물론 인간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는 이런 천박함에 대한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이런 몰상식한 행태에 대한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출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불합리와 부당함 앞에 침묵했고, 연대는 깨어지고 개인은 고립되었다. 그 결과, 모든 사건은 사건의 당사자만의 싸움이 되었다. 여기에 중심을 잃은 몇몇 방송사는 큰 역할을 했다. 세계적인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텔레비전은 '독재자의 기관'" 이라며 "말대꾸하는 게 민주주의인데 텔레비전은 여태껏 말대꾸를 못 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텔레비전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이미지를 왜곡, 조작하며 텔레비전에 거침없이 말대꾸했다. 백남준으로 말미암아 독재자의 기관으로서 텔레비전의 권위는 무너져 내렸다. 이처럼, 어쩌면 우리가 국가와 권력에 말대꾸를 하지 않았던 것이 쌓여서 이런 대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지금은 마지막까지 우리 모두 희망을 갖자. 희망을 믿는 한, 기적은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