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학 충남교육혁신연구소』 이병학 소장 칼럼_25‘학생맞춤통합지원법’은 교육도, 복지도 아니다
『이병학 충남교육혁신연구소』 이병학 소장 - 교육의 본질을 무너뜨리는 무원칙한 통합은 선의로 포장된 공교육 해체의 길 -
다사다난했던 2025년의 끝자락입니다. 교육 현장은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이른바 학맞통 논란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학생 개개인의 상황을 고려해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는 취지는 그 자체로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교육은 선의만으로 운영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법과 제도는 그 취지뿐만 아니라, 누가 무엇을 어디까지 책임지는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제1조는 이 법의 목적을 학습, 복지, 건강, 진로, 상담 등 학생 생활 전반에 대한 통합적 지원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범위는 매우 포괄적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 조항들입니다. 같은 법 제3조 제4항과 제5항은 학생맞춤통합지원의 실질적 수행 주체를 학교와 교원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육의 영역을 넘어서는 책임을 학교에 전가하는 구조입니다.
가장 우려스러운 조항은 제4조입니다.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경우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는 이 조항은 학맞통을 사실상 우선 적용되는 포괄법으로 만듭니다. 지원 필요성이 제기되거나 요구가 발생할 경우, 학교는 학맞통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모든 사안을 떠안게 됩니다. 그 결과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복지와 행정의 최전선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실제 현장에서 소개되는 학맞통 ‘우수사례’들은 이러한 구조적 위험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학생의 아침 식사를 챙기고, 생활 전반과 가정 문제에 학교가 개입하며, 학부모에게 각종 생활·금융 정보를 안내하고, 심지어 학생 가정의 생활 문제까지 학교가 직접 처리한 사례들이 모범 사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학교가 해야 할 교육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부 교육청 주관 연수에서 언급된 사례입니다. 미성년 학생의 임신과 관련해, 학생이 상처받지 않도록 ‘적절한 의료기관을 안내하는 것’을 우수사례로 소개했다는 이야기는 교육의 역할과 한계를 심각하게 혼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생명과 윤리, 책임의 문제를 다뤄야 할 학교가, 사회적 합의와 명확한 기준 없이 판단과 개입의 주체가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는 교사를 보호하지도, 학생을 진정으로 돕지도 못합니다.
저는 학생 지원이나 복지 자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책임은 전문 인력과 전문 기관이 져야 합니다. 전문성도, 책임 구조도 없이 모든 것을 학교에 통합하겠다는 발상은 결국 교육도 복지도 아닌 결과를 낳습니다.
이번 논란은 우리 사회가 교육을 어떤 철학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충분한 논의와 숙의 없이, 듣기 좋은 말로 포장된 입법이 현장을 얼마나 빠르게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에 대한 철학의 문제입니다.
최근 경기도 임태희 교육감이 “교사는 복지 행정의 담당자가 아니다”라고 밝히며 제도의 개정이나 시행 유예를 언급한 것은 교육의 본질을 정확히 짚은 발언입니다. 충남의 교사들 또한 학맞통이 가져올 혼란과 부담을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현장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습니다.
저는 충남교육청에 분명히 요구합니다.
첫째,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의 즉각적인 현장 적용 중단과 시행 유예를 공식적으로 요청해야 합니다.
둘째, 학맞통과 관련된 학교·교원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제한하는 행정 지침을 조속히 마련해야 합니다.
셋째, 복지·상담·위기 개입은 학교가 아닌 전문기관 중심의 분리 운영 체계로 전환해야 합니다.
넷째, 교사에게 법적·윤리적 판단을 떠넘기는 연수와 사례 제시는 즉각 중단되어야 하며, 연수 내용 전면 재점검이 필요합니다.
다섯째, 그 모든 과정에서 현장 교사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수렴하는 구조를 먼저 만들기 바랍니다.
저 이병학은 학생맞춤통합지원법에 반대합니다. 이는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생이 받아야 할 교육의 질과 방향을 지키기 위한 선택입니다. 학교가 감당할 수 없는 역할까지 떠안게 될 때,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입니다. 수업이 흔들리고 교육의 기준이 무너질수록, 아이들은 제대로 배울 권리를 잃게 됩니다.
지금과 같은 구조로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이 시행된다면, 그 혼란과 부작용은 결국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충남교육청이 이 점을 직시하고, 학생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책임 있는 판단을 내려주기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도민 여러분께서도 이 문제를 교사나 학교의 이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의 문제로 함께 고민해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