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학 충남교육혁신연구소』 이병학 소장 칼럼_22
-명확하고 적정한 업무 분장이 교사의 생명과 학생의 수업권 지킨다 -교사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곧 학생의 수업권을 지키는 일 -학생의 수업권을 지키는 진정한 교육혁신 절실
지난 10월 초, 충남 아산의 한 중학교 교사 A씨의 죽음은 우리에게 또다시 학교 현장의 왜곡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고인은 60학급이나 되는 거대한 학교의 노후된 시청각·방송 업무를 홀로 전담하며, 각종 방송 시설, 방송 송출, 시청각기기를 관리하였습니다. 정보부장 업무가 공석이 됨에 따라 각 교실의 전자칠판, 전자교탁, 수 백대에 달하는 테블릿PC와 노트북의 유지·보수 업무를 한 것도 모자라 교권침해 문제가 있던 학급의 담임까지 맡았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선생님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메니에르병(어지럼증, 청력 저하, 이명, 귀 먹먹함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스트레스성 질환)’ 진단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누적된 피로와 극한의 정신적 압박은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번 사건이 결코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오래된 학교 현장의 구조적 문제가 빚어낸 참극이라고 생각합니다.
■ 학교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교사를 병들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교사가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사람’,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정확히는 교사들이 수업 외에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하지요.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각종 행정업무, 민원대응 등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특히 방송·정보화 업무 담당 교사들은 본질 업무인 수업 외에 ‘행정 공무원’에 가까운 일을 떠맡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반적으로 학교는 ‘업무분장표’라는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과 책임 회피로 인해 이번 사건처럼 한 교사에게 여러 역할이 집중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A교사의 사례는 이런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방송, 스마트 기기관리, 정보업무, 교권침해가 발생한 학급 담임까지. 고인이 감당한 일은 결코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헌신적인 교사, 책임감이 강한 교사’일수록 A교사처럼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맡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단순히 교사 개인의 건강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교사가 지쳐 쓰러지면 학생의 수업권은 어떻게 될까요. 업무에 지친 교사는 제대로 된 수업 준비를 할 시간이 부족하고, 학생들을 위해 쓰여야 할 시간이 줄어들게 됩니다. 결국 업무가 불균형하게 분배된 학교일수록 교육의 질은 낮아지고, 교사와 학생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 ‘명확한 업무분장’과 ‘학교행정 전문화’가 해법이다
학교가 ‘교사 개인의 헌신’에 의존하는 현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학교 내 명확한 업무분장과 인력 배치 기준 마련이 시급합니다. 방송·정보·시설·행정 등의 영역은 교사 개인에게 전가하기보다, 전문 인력의 확충이나 각 지역교육지원청의 학교지원센터에서 업무를 분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교사가 본질 업무인 ‘수업과 학생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교사에게 수업 외 업무가 많아질수록 학생들은 양질의 교육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충남교육청은 ‘교사의 수업권 보장’을 명문화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최근 학교에 급속도로 보급된 스마트기기들의 관리 체계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합니다. 전자칠판이 고장나면 당장 그 교실은 수업을 할 수 없습니다. 보통 A/S를 부르면 2주가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A교사는 교실에서 수업이 중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홀로 야근을 해가며 전자칠판을 고쳤습니다. 이는 비단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각 학교에서 개별적으로 구입 및 관리하는 스마트기기들을 충남교육청이 입찰을 통해 공동구매하고 일괄 관리하도록 수년 전부터 요구해 왔습니다. 이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예산 절감과 학교의 행정업무 경감이 모두 가능할 것입니다. 충남교육청은 교육청의 일이 많아진다는 이유로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교사의 건강권과 정신건강을 위한 관리 체계도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기적인 스트레스 진단과 상담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합니다. 단순히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실행만 하고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교사의 정신건강을 치유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 교사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곧 학생의 수업권을 지키는 일
고인이 그 힘든 순간에도 마지막까지 학교와 학생들을 걱정했을 생각을 하면 제 마음이 미어집니다. 학생들의 수업이 멈추지 않도록 선생님께서는 끝까지 헌신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 누구보다 학교와 학생을 사랑하고 성실했기 때문에 더 많은 일을 맡았다”는 동료 교사들의 증언이 나옵니다. 이 얼마나 원통한 일입니까. 충남교육청과 학교는 교사를 지켜주지 못했고, 교사의 희생과 헌신을 당연시했습니다. 자, 이제 이 죽음에 대해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습니까?
고인의 비극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제는 교사 개인의 ‘열정’과 ‘희생’이 아니라 ‘제도’와 ‘구조’가 뒷받침되는 교육현장으로 바꿔야 합니다. 교사가 학생 교육보다 다른 업무의 무게 때문에 무너지는 학교는 결코 건강한 교육기관이 아닙니다. 명확하고 적정한 업무분장, 행정인력의 확충과 전문화, 교사에 대한 배려가 교사를 지키고 궁극적으로는 학생의 수업권을 지키는 진정한 교육혁신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선생님께서 순직 인정이 될 수 있도록 충남교육청은 최선을 다해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병학 충남교육혁신연구소』 이병학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