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몽설(夢中夢說)-6

2025-06-21     보령뉴스

 

몇몇 교육학자들은 학생들에게 경쟁을 시키지 말라고 한다. 서열교육은 인성을 해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한다. 일부 교사들은 학력평가를 반대하고 있다. 평가를 하면 학생과 학교와 교사들 간에 경쟁을 하게 되고 경쟁은 인성을 해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핀란드는 무학년제(無學年制) 교육의 실시로 무한경쟁(無限競爭)을 시키고 있다.

앞으로 일류국가는 두뇌를 팔고 삼류국가는 물건을 파는 시대가 온다. 다시 말해 우수한 1%가 나머지 99%를 먹여 살리는 시대가 온다. 이런 미래의 대비책(對備策)으로 교육의 기회는 부여하되 잘하는 사람은 더욱 잘할 수 있게 하고 못하는 사람은 나름대로의 능력과 소질을 살려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교육의 하향평준화는 공멸(共滅)로 가는 첩경이다. 세계적 인재의 양성을 위해 경쟁은 꼭 필요하다. 경쟁은 평가로부터 나오며 평가의 결과는 서열로 나타난다. 만약 모든 학교가 시험을 치르지 않고 추첨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모든 직장이 추첨으로 신입 직원을 선발한다면 나라의 장래를 예측해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세계는 무한경쟁 속에 있고, 이 경쟁에서 낙오되는 나라는 비참하게 살 수밖에 없다. 이제 중․고교에서 우열반(優劣班)을 편성하고 대학입시(大學入試)를 부활할 때가 분명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이중성을 갖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중 잣대로 모든 사물을 재단하며 살아간다. 인간의 삶은 부끄러움을 알기보다는 부끄러움을 깔고 앉아 얼마나 뻔뻔하게 사느냐가 축재나 출세를 좌우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허가 난 부패의 또 다른 이름인 전관예우(前官禮遇)는 언제 없어질지 예측조차 할 수가 없고, 이기주의는 부끄러움도 모를 만큼 팽배한 것 같다.

지위가 높은 것이 자랑스러운 사회는 되지 못하더라도, 지위가 높은 것이 부끄러운 사회는 면해야 인간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위(地位)와 부조리(不條理)가 비례한다면, 권한이나 권력이 축재의 수단이라면 그런 나라의 미래는 어떨까. 모두가 생각해 볼 일이다.

6․25 전쟁의 참혹함을, 호국영령들의 거룩한 희생을, 6․25 전쟁 유가족의 고통을, 청춘을 바쳐 나라를 지킨 6·25 참전용사의 공로를, 이역만리 타국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피 흘려 싸운 유엔군의 공로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6·25 전쟁(戰爭)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역사(歷史)를 바르게 가르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에도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은 한미(韓美) 군사동맹(軍事同盟)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 땅에 6․25 전쟁과 같은 비극이 없어야 되겠으며,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베지티우스의 명언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도록 하자.

칭찬(稱讚)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은 칭찬의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고래 조련사(調鍊師)가 거대한 몸통의 범고래를 조련하면서 잘하면 맛있는 것을 주고 아낌없이 칭찬을 해 준다.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야단을 치지 않고 재빨리 전환해 격려를 해주니 환상적인 점프(jump)와 수중 쇼(show)를 하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고래도 춤추게 할 만큼 대단한 위력을 지닌 칭찬은 사람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준다. 내가 누군가를 칭찬하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상대도 나를 똑같이 좋은 시각으로 보게 된다.

칭찬(稱讚)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커다란 힘을 갖고 있다. 우연히 들은 긍정의 말 몇 마디에 용기를 얻어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도약을 꿈꾸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세계적인 동화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격려(激勵)해주고 칭찬했던 어머니의 영향이었다.

향긋한 쑥국을 먹으면 새삼 봄을 느낀다. 달래와 냉이 그리고 쑥은 흙의 숨결을 받은 봄이 주는 선물이다. 파아란 보리밭을 건너오던 봄바람, 그리고 그 너머에 아물아물 피던 아지랑이와 푸릇하게 물오른 여린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애달피 우는 산새는 오는 봄을 더 짙고 또렷하게 만든다.

봄은 냇가에도 온다. 냇가의 봄은 소리와 물빛으로 오는데, 겨울 내내 하얗게 얼어 있던 물이 조금씩 녹아서 흐르는 냇물은 생명(生命)을 일깨우는 졸졸졸 소리로 발길을 멈추게 한다. 손을 씻으면 아직 살짝 차가운 듯해도 겨울의 물과는 다른 개운함을 느낄 수가 있다.

향긋한 냉이된장찌개와 쑥국은 금방 밥 한 그릇을 비우기에 충분하고 봄을 느끼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그렇게 몇 번 쑥국과 냉이된장찌개를 먹고 나면 봄은 어느새 성큼 와 있다.

날마다 산은 조금씩 푸릇푸릇해지고, 배나무도 하아얀 배꽃을 피운다. 배꽃이 피면 배꽃의 그 하아얀 물결로 인해 밤에도 길을 환하게 비춘다. 배꽃이 질 때면 눈이 오는 듯하고 꽃잎이 가만가만 내려앉은 그 하아얀 길은 밟기가 참으로 미안하고 미안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으로, 힘이나 세력 따위가 한번 성(盛)하면 얼마 못 가서 반드시 쇠(衰)하여짐을 비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이다.

봄꽃은 추운 겨울을 이기고 세상에 봄이 왔다는 것을 알리고 아름다움을 뽐내려고 피어난다. 때문에 꽃이 피다가 춘삼월 눈비에 얼어붙기도 하고 꽃샘추위에 더딘 발자국을 옮기기도 한다.

봄꽃은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하지만, 추운 겨울이 지나갔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꽃이 피어서 지지 않으면 꽃이 아니다. 꽃이 피어서 져야만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식물에게 꽃은 단지 씨앗을 남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식물의 꽃을 보며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하지만, 꽃은 식물에게 절실한 자기표현인 셈이다. 이 절실한 표현을 통해서 꽃에 나비와 벌을 불러들여 씨앗을 맺을 수 있게 도움을 받는다. 또한 벌과 나비는 꽃에서 꿀과 꽃가루를 받으며 서로가 상생하는 관계로 살아간다.

옛날 선각자들은 이러한 자연의 조화를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교훈을 남겼다. 그 말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또한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처럼 권세는 10년을 넘지 못한다는 것과 뜻을 함께하고 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도 아마 이러한 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꽃은 피어서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떨어진다. 그 짧은 기간의 아름다움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권력을 잡고 명예를